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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작가의 3.1혁명(5)] 레닌의 민족자결주의,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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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작가
기사입력 2019-04-08

지난 3편에서 3.1만세운동에 영향을 끼친 ‘민족자결주의’를 언급했습니다. 이건 좀 생소한 내용인데, 러시아 혁명의 주역 레닌도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했지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레닌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더라도 약소민족이 제국주의의 핍박에서 벗어나 독립을 하고 싶은 민족이 있다면 우리가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에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레닌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습니다.

 

▲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은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혁명가로 공산주의자임과 동시에 레닌주의 이념의 창시자이다.     © 위키백과


¶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이동휘

 

대표적인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가 이동휘입니다. 이동휘는 1918년 연해주에서 한인사회당을 조직해, 1919년 사회주의자 중심의 만세운동을 연해주에서 이끌어냅니다. 이후 대한독립의회를 만들어 일종의 임시정부 형태의 단체를 만들죠.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해 임시정부 전에도 여러 개의 임시정부가 조직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서울에 조직된 한성임시정부, 연해주에 위치한 대한독립의회, 상해의 상해임시정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힘을 합쳐 1919년 9월 상해 임시정부가 출범합니다.

 

▲ 1921년 이승만대통령 취임식. 가운데는 이승만, 가운데 왼쪽이 이동휘, 오른 쪽은 안창호     ©위키백과

 

이동휘는 국무총리로 취임해 상해 임시정부의 내정을 꾸려나가는 역할을 합니다.


나중에 더 설명드리겠지만 당시 독립투쟁의 노선은 이승만, 안창호, 이동휘가 각각 주장했던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뉩니다.

 

외교를 통해 독립해야 한다고 이승만의 주장과 달리 이동휘는 만세운동으로는 독립을 쟁취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장투쟁을 통해 강력한 힘을 얻어야 한반도에서 일본을 몰아내고 독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동휘는 레닌의 민족자결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 3.1운동에서 잊혀진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해야 한다.

 

3.1운동에 대한 역사관은 민족주의와 임시정부를 주류로 보고 있지만 당대 이 두 가지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회주의자들 역시 독립운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죠. 특히 1920년 노동자 운동과 결합해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초점은 민족주의자 위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분단 이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걸맞는 이승만, 안창호 등의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역사를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연해주 지역의 사람들은 사회주의자 성향을 띠고 있고, 단지 사회주의자였다는 이유로 현재의 역사에서 잊혀졌습니다.

 

 

▲ 이동휘. 일제 강점기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1919년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역임하기도 했다.     ©위키백과

 

하지만 이동휘나 여운형은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닌 사회주의자입니다. 특히 이동휘는 임시정부의 2인자로 내정을 꾸려나감과 동시에 독립투쟁의 의지를 강하게 밝히며 무장독립투쟁을 주장합니다. 기존의 사관에서 벗어나 재조명을 할 필요가 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과거보다 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대한민국은 통일 이후 새로운 역사 정립이 필요합니다. 특히 남한과 북한은 1948년 각각의 정부가 수립된 이후 다른 역사를 기록해왔기 때문에 통일된 역사를 기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회주의 사상을 지닌 독립운동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을 연구하는 과정해서 북한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이 발굴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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