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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민_이야기(19)]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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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봉달
기사입력 2019-03-16

한국말을 쓰고 두유노김치를 한스러워 하면서도 김치를 먹으며 한국 그로서리 등이 모여있는 읍내 근처에서 쭈욱 살고자 하는 나로서는 꾸준한 한국 젊은이들의 유입이 아쉬울 따름이다. 모여야 커지고 모여야 효율적이 되며 모여야 힘을 갖게 된다. 시카고는 LA나 뉴욕 등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다른 대도시와 이민 역사가 달라 특히 더 그렇다. 나처럼 무직자 부랄 두쪽만 갖고 온 사람들은 원래 LA 뉴욕으로 가는 거다. 시카고는 벨연구소나 페르미연구소 등 유수의 과학시설 및 국제적인 제약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초창기 이민온 한인들을 보면 과학자나 의학자들이 많았다.

 

각자 잘난 맛에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센징이 모여봤자 싸움 밖에 더하겠나 현명한 판단이 아닐 수 없지만 덕분에 다른 대도시들처럼 곧 죽어도 모여 살아 상권을 키우고 그래서 사람이 더 모이고 상권이 더 커지는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젠 그나마 종종 유입되던 백수 놈팽이 연놈들마저 맥이 끊겼으니 시카고 한인 커뮤니티는 LA처럼 한인 상권만으로 자체 경제가 돌아가기는 글렀고 아틀란타나 달라스처럼 규모의 경제도 틀렸으며 이런 상태로는 예전 많은 이민자 커뮤니티가 그랬듯 점점 쇠락하여 주류 사회에 흡수되겠지 싶다.

 

이번엔 번외편격 에피소드 하나 투척.

 

지난 번 비자면제 이후 미국에 화류계 언니들이 급증했다는 부분까지 썼는데, 시카고도 혜택(?)을 많이 받았다. 소시적 한국에 있을 때 상사에 근무하며 지겹게 다니기도 했고 또 좋은 데는 내 돈 주고 가는 게 아니라는 이상한 개똥철학이 있어서 시카고 지역 룸빵은 말로만 듣고 실제로 가보지는 않았다.

 

유일한 예외는 동료 기자의 형님이 미국에 진출하시며 시카고에 신장개업을 했을 때다. 한국은 기업별로 홍보팀이 알아서 접대를 해주지만 미국 특히 시카고 같은 시골(한인 커뮤니티 측면에서)에선 일간지들도 동네 벼룩신문마냥 업주로부터 다이다이로 향응 받고 대신 홍보도 해주고 그런다. 그 형님도 동생 동료 대접도 하고 본인 비즈니스 홍보도 할겸 겸사겸사 기자들을 초대한 것이었다.

 

백만년만에 가는 룸빵이라 조금도 설레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터다. 간만에 고향 누이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회포도 풀고 동포끼리 향수병도 달래면 이 어찌 좋지 아니하겠는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위스키를 까고 있는데 언냐들이 초이스를 위해 들어오셨다.

 

강남 쩜오는 고사하고 엘에이나 한국의 종로 일대 회사 근처 박리다매형 업소만도 못한 수준이었으나 그래도 노래방 보도보다는 나았다. 물론 평균 이상의 와꾸였으니 시카고에서 이 정도가 어딘가. 한인커뮤니티가 커질수록 여러 부문에서 혜택이 많아지는 것 같다. 참고로 평가는 다른 기자들이 한 것이지 절대 내가 뭘 알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니 혹시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기자들 중 내 나이가 가장 어렸던 관계로 횽아들이 막내인 나 먼저 고르라고 했다. 예의 바른 나는 허생전에도 나온 바 하루라도 먼저 나온 이가 오른손으로 선초이스를 하셔야 한다고 박박 우겼다.

 

그렇게 고른 파트너를 옆에 앉히고 각자 탐색전 및 호구조사에 들어갔다. 보통 예의상 서로 부모님 안부를 묻고 몇 마디 더 주고 받은 뒤 노래를 부르며 부어라 마셔라를 해야 되는데 이 언니랑 말을 섞다보니 뭔가 점점 이상한 거다.

 

나: “ㅎㅎㅎ 나도 거기 알아요. 재밌는 데 많이 가셨구나. 그래서 고향이..?”

언니: “송파 살았는데 지금은 경기도로 이사갔어요”

나: “오 나도 송파에서 학교 다 나왔는데. 송파 어디 쪽이에요, 잠실?”

언니: “변두리에요. 오금동.”

나: “오 나 거기서 학교 나왔는데.. 헉.”

언니: “그러셨구나~ 헉?”

나: “호… 혹시 오금고는 아니죠?”

언니: “마.. 맞는데요.”

나: “억!!!”

언니: “어맛!!”

 

언니는 기수도 나보다 한 학년 바로 아래였다. 우리는 순식간에 참 통하는 게 많았다. 맨날 술이나 퍼마시며 수업은 내내 자습을 시킨 학주 얘기, 두루마기 한복 입고 다니며 변태짓을 하던 나까무라 선생, 전교생 조회시간 부모 등골 빼서 명품 사입으면 좋냐며 착용을 금지시킨, 교장 선생님이 유일하게 알던 브랜드 죠다쉬… 울고 웃으며 교감을 나누고 있는데 다른 기자들이 나도 아가씨랑 같이 스테이지에 나가 노래도 부르고 좀 하란다.

 

 

*글쓴이: 봉달(필명)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한국에서 상사 근무 후 도미, 시카고에서 신문기자 생활. 물류업체 취업 후 관세사 자격증 따고 현재 캐터필러 기차사업부 Progress Rail의 통관부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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